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바르비롤리 (문단 편집) == 소개 == 아버지는 이탈리아인이었고, 어머니는 보로도 출신 프랑스인이었다. 그의 세례명은 이탈리아식인 Giovanni Battista Barbirolli(조반니 바티스타 바르비롤리)이다.[* 존으로 불린 이유는 본인이 사람들이 부르기 편한 이름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의 첫번째 언어는 이탈리아어, 두번째 언어는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는 세번째 언어였다. 그러나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뉴욕 필 상임지휘자 시절을 제외하면 일생을 영국에서 살았다. 존 바비롤리 본인 스스로도 영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였고, 그는 첼로를 배웠다. 17세 때부터 오케스트라 첼로 단원으로서 프로 음악가 경력을 시작했다. 퀸즈 홀 오케스트라 등에서 첼로 단원을 지냈다. 이후 런던을 중심으로 지휘자로 활동했다. 젊은 시절에는 코벤트가든 오페라 등에서 오페라 지휘자로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또 맨체스터의 할레 오케스트라와 가까운 인연을 맺기도 했다. 1936년에는 일약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허나 뉴욕 필 시절은 그에게 영광이라기 보다는 시련의 시기가 되었다. 그의 전임자는 무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였다. 게다가 뉴욕 필은 토스카니니의 후임으로 처음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영입하려고 했으나 푸르트벵글러 본인이 뉴욕행을 꺼렸고, 당시 미국과 나치 독일간에 고조되던 정치적 긴장감 등으로 인한 반대 여론도 있어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뉴욕 필의 포스트에 오르게 된 바비롤리는 처음부터 뉴욕 필의 후원자들과 평론가들의 성에 차지 않았고 임기 내내 평론가들과 애호가들로부터 부정적인 평에 시달렸다. 뉴욕 필에서의 임기가 끝나고 할레 오케스트라의 초청을 받아 영국행 화물선에[* 당시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화물선이라도 타고 대서양을 행단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었고 유보트에게 발각되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을 실제로 겪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바비롤리가 탄 화물선 역시 미해군 군함들에 의해 호위를 받으며 운행했다.] 몸을 실으면서 홀가분함을 표했을 정도.[*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윈스턴 처칠]]은 그의 영국 귀환 의사를 참모진을 통해 전달받고서 ‘이거 미친놈 아냐(…)’ 식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뉴욕을 떠나 독일군의 폭격을 맞고 있는 영국으로 돌아오겠고 하는 것이니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1941년 뉴욕 필의 상임지휘자 임기가 끝나면서 영국 맨체스터의 할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할레 오케스트라에서 25년간 상임지휘자를 지내면서 악단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게 되었다. 아울러 런던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주요 객원지휘자로 활동했으며, 유럽 대륙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1960년대 베를린 필에서 객원 지휘자로서 일련의 말러 교향곡들을 연주했는데, 당시 베를린에서는 말러가 별로 연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큰 화제를 모았다. 말러 교향곡 9번을 객원 지휘하고 나서 연주에 감동한 베를린 필 단원들의 요청으로 동곡을 음반으로 녹음하기도 했다. 1968년 고령을 이유로 할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악단과 관계를 이어갔다. 1970년 7월 29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일본 공연을 위해 말러 교향곡 1번 리허설을 마치고 자택으로 돌아간 후 그날 새벽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바비롤리는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국인 지휘자로 꼽혔다. 10여년전 영국 그라모폰지가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지휘자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이어 존 바비롤리가 2위에 올랐다. 아내는 에블린 로스웰(1911~2008)로 1938년에 결혼했는데 오케스트라의 오보에 수석을 맡은 유명한 오보에 연주자였다. 존 바비롤리가 이런 그의 아내를 위해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10번을 오보에 협주곡으로 편곡해서 아내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0yFFBL2alsM|브루크너 교향곡 7번 3악장 리허설 장면]]이 남아 있어 그의 리허설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